20200211 성령으로 거듭나지 않으면 (요한복음 3장 1-7절)

만일 우리의 과거 속에 기억하고 싶지 않는 장면들과 시간들… 우리의 실수들, 미련하게 행동했던 순간들을 마치 아궁이 불에 나뭇가지 던지듯 자취도 없이 태워버릴 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우리에게도 그런 열망이 있지 않습니까? 할 수만 있다면 다시 태어나고 싶고, 새 사람이 되고 싶고, 더 나은 사람이 되고 싶은 갈망 입니다. 그런데 여기 아주 놀랍고 반가운 소식이 하나 있습니다. 오늘 우리 앞에 놓인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은 인간에게 그러한 변화의 체험이 실제로 가능하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성경은 이러한 체험을 가리켜 ‘거듭나다’라고 말합니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할까요? 1절 말씀을 다시 한 번 함께 읽겠습니다. “(요 3:1) 바리새인 중에 니고데모라 하는 사람이 있으니 유대인의 관원이라” 오늘 우리가 함께 읽은 본문의 주인공은 ‘니고데모’라는 사람입니다. 1절 말씀을 보니 그에 대하여 2가지를 소개하고 있는데요. 그는 바리새인이었고, 또한 유대인의 관원이었습니다. ‘바리새인’이라는 것은 그 당시 유대인들 사이에서 가장 존경 받는 종교 지도자들을 가리킵니다. 바리새인들은 하나님의 주신 법을 지키는 것에 대한 남다른 열심이 있었습니다. 일주일에 두 번 자원해서 금식하며, 매일 정해진 시간마다 기도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연구하고 그 말씀대로 살아가는 일에 헌신된 사람들 입니다. 물론 바리새인 가운데 겉으로는 그렇게 살았음에도 불구하고, 속으로는 가식적이고 위선적인 사람들도 많이 있었습니다만, 여전히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살아가려는 이들의 헌신과 노력으로 인해 백성들에게 존경을 받았던 것이죠. 바리새인이었던 니고데모 역시 진리 탐구에 대한 남다른 열정이 있던 사람 입니다. 그는 “사람은 어디에서 왔으며, 무엇을 위해 살며, 죽으면 어디로 가는가? 죽음 이후에는 무엇이 우리는 기다리고 있는가? 죽음 이후 영원한 삶이 있다면 현재 우리는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가?”하는 매우 철학적이지만 동시에 삶의 본질적인 이런 질문들에 대한 해답을 하나님의 말씀인 율법 속에서 찾고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니고데모는 또한 유대인의 관원이라 했습니다. 유대인들의 경우 의회를 구성하는 사림이 총 70명 입니다. 니고데모는 그 중 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니 니고데모는 유대 사회에서 엄청난 영향력을 가진 사림인 셈이죠. 니고데모는 많은 학식과 높은 사회 지위, 사람들의 존경을 받고 또한 부유한 사람 입니다. 그는 사회적으로 성공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니고데모 안에는 여전히 채워지지 목마름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변화에 대한 목마름이며, 진리에 대한 목마름이었습니다. “이게 삶의 전부는 아닐텐데… 어떻게 살아가는 것이 옳은 것일까?”
그렇게 이 세상의 진리를 찾기 위해 씨름하며 살아가던 어느 날 니고데모는 나사렛이란 시골 도시 출신이며 30대 즈음 된 청년 예수에 대한 소문을 듣게 됩니다. 이 예수에 대한 소문은 믿기 힘들만큼 대단했습니다. 어떠한 병자라도 그를 만난 후 고침을 받았습니다. 눈이 먼 소경이 예수를 찾아가면 눈을 뜨고, 벙어리가 예수를 찾아가면 입이 열렸습니다. 들리는 소문에 의하면 그는 성난 파도도 잠재우며, 포도주가 떨어진 결혼 피로연에서 물을 변화시켜 포도주로 만들었다는 소문까지 들려 왔습니다. 이런 믿기 힘든 소문들이 하나 둘 씩 더해가자 니고데모는 예수에 대한 호기심을 저버릴 수 없었습니다.
Who is this Jesus? What makes him special? 평생 성경을 열심히 연구해 온 니고데모는 하나님께서 이 세상에 죄로 인해 고통 당하며 아파하는 인간들을 위해 구원자를 보내주실 것이라 약속하신 말씀을 익히 잘 알고 있었습니다. 따라서 니고데모가 예수에 대한 소문을 듣게 되었을 때, “혹시 저 사람이 하나님께서 보내주시기로 약속하신 구원자는 아닐까?” 하는 생각을 자연스럽게 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지금 예수를 만나러 가기에는 상황이 좋지 않습니다. 이미 유대인의 최고 의결 기관인 공의회에서는 예수에 대한 반대 여론이 상당한 힘을 얻고 있었습니다. 예수와 가까이 지내는 것은 니고데모의 정치 이력에 커다란 오점을 남길 수도 있습니다. 동료 정치인들에게 지탄을 당하고 비난을 받을 수도 있습니다. 그렇지만 여전히 니고데모는 예수를 만나보고 싶었습니다. 자신의 눈으로 이 사람이 정말 내가 평생토록 찾아다닌 인생의 정답을 제공해 줄 수 있는 자인지 확인해 보고 싶었습니다. 만일 그렇지 않는다 하더라도 한 번 즈음은 이 놀라운 소문들과 기적의 주인공인 예수를 직접 눈으로 보고 싶었습니다. 왜냐하면 지금 예수님이 일으키는 기적들은 분명 하나님의 능력이 함께하시지 않으면 불가능한 것들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니고데모는 유대인의 관원입니다. 국회의원입니다. 길거리를 걷거나 시장에 가도 그를 알아보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따라서 보는 눈이 많은 밝은 대낮에 예수님을 찾아갈 수는 없는 노릇 입니다. 결국 자신의 신분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었던 니고데모는 어두운 밤 컴컴한 밤 남몰래 예수님을 찾아가기로 결정 합니다. 2절 말씀을 함께 읽겠습니다. “(요 3:2) 그가 밤에 예수께 와서 가로되 랍비여 우리가 당신은 하나님께로서 오신 선생인 줄 아나이다 하나님이 함께 하시지 아니하시면 당신의 행하시는 이 표적을 아무라도 할 수 없음이니이다”
니고데모를 보신 예수님은 이미 그의 마음을 환희 꿰뚫어 보고 계셨습니다. 그가 무엇 때문에 이 늦은 밤 자기를 찾아온 줄 다 알고 계십니다. 진리에 대한 목마름 입니다. 변화에 대한 목마름입니다. “이 세상을 창조한 창조주 하나님이 계시다면 과연 나는 이 세상을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가?” 하는 가장 귀한 질문들이었습니다. 오늘 자신을 찾아온 니고데모에게 예수님은 다음과 같이 말씀 하셨습니다. 3절 말씀을 함께 읽겠습니다. “(요 3:3)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를 볼 수 없느니라”
예수님은 니고데모에게 그가 원하는 인생의 정답을 찾기 위해서는 반드시 거듭나야 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오늘 우리는 이 예수님의 대답을 조금 더 깊게 살펴볼 것입니다. 과연 누가 거듭나야 하는 것일까요? 왜 거듭나야 하는 것일까요? 또 어떻게 하면 거듭날 수 있을까요? 이 질문들에 대한 이야기 입니다.
먼저 누가 거듭나야 하는 것일까요? 흔히 사람들은 뒷골목에서 자기 주먹만 믿고 어두운 인생을 살아온 조직 폭력배나 사람들 등쳐 먹으며 살아온 사기꾼들 혹은 사창가의 여인들, 감옥이나 구치소에서 나와 두부를 먹으며 출소하는 사람들을 보며 저 사람들은 이제 다시 태어나, 이전과는 다른 새로운 삶을 살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다른 사람과 비교해 봐도 특별히 남들에게 큰 해악을 끼친 적도 없고, 사회적으로 무리를 일으키거나, 범죄행위를 저지른 적이 없는 나 자신은 다시 태어나야 한다는 이야기와는 거리가 멀다고 생각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과연 우리는 어떻습니까? 예수님 말씀대로 거듭난 삶을 살 필요 없이, 그냥 지금 있는 모습 그대로 살아도 괜찮을까요?
그러나 오늘 예수님께서 거듭나야 한다고 말씀하시는 지금 이 니고데모라는 사람은 어떤 인물이었습니까? 당시 가장 높은 도적적인 삶을 살기 위해 평생을 헌신한 바리새인 입니다. 가난하고 불쌍한 이웃을 향한 봉사와 윤리적인 삶을 살도록 가르치는 교사 입니다. 니고데모는 그 시대 한 사회의 정신적인 기둥의 역할을 하는 사람이었습니다. 자, 만일 예수님께서 이런 사람을 보시고도, “그대는 거듭나야 한다”라고 말씀하셨다면, 이런 니고데모도 거듭나야 할 필요가 있었다면 우리들도 거듭나야 할 필요가 있지 않을까요?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은 이 세상 모든 사람들이 거듭나야 한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자, 그렇다면 왜 우리는 거듭나야 할까요? 우리가 조금 전 읽은 요한복음 3장 3절 말씀을 보면 예수님께서 니고데모에게 거듭나야 한다고 말씀하시며, 거듭남이 하나님의 나라와 관련되어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사람이 거듭나야 비로소 전에 볼 수 없었던 하나님 나라를 바라볼 수 있게 된다고 말씀 하셨습니다. 5절 말씀도 함께 읽겠습니다.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물과 성령으로 나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에 들어 갈수 없느니라” 자, 이번에는 예수님께서 거듭남과 하나님 나라의 관계를 이렇게 설명 하십니다. 사람이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에 들어 갈 수가 없습니다. 말씀을 다시 정리해 보면, 거듭난 사람만이 하나님 나라를 볼 수 있고, 또 거듭난 사람만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있습니다.
조금 더 쉬운 개념으로 설명해 보겠습니다. 우리는 처음 육신을 가지고 태어날 때 우리 부모의 자녀로 태어나게 됩니다. 그러나 이제 두 번째 영혼이 다시 태어나게 될 때, 즉 거듭나게 될 때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로 태어나게 됩니다. 성경이 말하는 거듭남이란 바로 ‘영적인 탄생’ 입니다. 성경에 기록된 ‘거듭남’이란 표현은 원어 성경에 보면 ‘Born from above’(위로부터 태어난다)는 뜻이 있습니다. 즉 우리가 이 땅에서 부모의 자녀로서 태어나듯이, 거듭난다는 것은 하늘에 계신 하나님의 자녀로서 우리의 영혼이 새롭게 태어난다는 뜻 입니다.
자, 이제 가장 중요한 질문이 남아 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거듭날 수 있습니까? 다시 말하면 우리는 어떻게 하나님의 자녀가 될 수 있을까요? 오늘 우리가 함께 읽은 요한복음의 저자이자 예수님의 제자 요한이 그 해답을 장 정리해 놓았습니다. 요한복음 1장 12절을 보면 이렇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영접한다는 것은 모셔 들인다는 말입니다. 우리 집에 손님이 왔을 때, 집 주인인 내가 문을 열고 집 안으로 들어오도록 하는 행위가 영접하는 것이죠. 이와 같이 내 마음의 문을 열고 예수님께서 들어 오시도록 초대하는 것이 바로 예수님을 영접하는 것입니다. 누구든지 예수님을 그 마음에 모셔 들이고, 나의 구원자로 고백하는 사람은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것을 예수님을 인격적으로 고백한다고 표현 합니다.
예수님을 믿으십시오. 마음 문을 열고 예수님을 초대 하십시오. 그리하면 거듭 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자녀가 됩니다. 모든 과거의 어두운 죄는 씻어지고, 새로운 미래를 꿈꿀 수 있게 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저와 여러분 모두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이 복된 삶을 살아가실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