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모데후서는 바울이 디모데에게 남기는 유언과도 같은 편지 입니다. 바울은 자신이 사랑하는 믿음의 아들 디모데가 그의 뒤를 이어서 복음을 전파하는 사역자의 길을 걷기를 원했습니다. 또한 현재 에베소 교회에서 목회하고 있는 그에게 목회의 지침을 제시하며 그가 어떻게 교회를 이끌어가야 하는지 가르쳐 주었습니다. 오늘 본문 말씀을 통해 바울은 또 다시 디모데에게 그의 사명을 밝히 말해주었습니다. “(딤전4:1) 하나님 앞과 살아 있는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실 그리스도 예수 앞에서 그가 나타나실 것과 그의 나라를 두고 엄히 명하노니 (딤전4:2) 너는 말씀을 전파하라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항상 힘쓰라 범사에 오래 참음과 가르침으로 경책하며 경계하며 권하라” 바울이 디모데에게 전해 준 사명은 “하나님과 그리스도 예수 앞에서” 말씀을 전파하는” 것이었습니다.
바울은 자신의 뒤를 이어 사역하게 될 디모데가 겪을 어려움을 알려 주었습니다. “(딤전4:3) 때가 이르리니 사람이 바른 교훈을 받지 아니하며 귀가 가려워서 자기의 사욕을 따를 스승을 많이 두고” (딤전4:4) 또 그 귀를 진리에서 돌이켜 허탄한 이야기를 따르리라” 시간이 갈수록 마음이 더욱 완악해진 세상 사람들은 이전 세대처럼 말씀을 잘 들으려고 하지 않을 것입니다. 오늘날 교회의 기성 세대들은 젊은 세대들을 보면 걱정이 많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열정이나, 교회를 사랑하는 마음이나 헌신하는 자세가 자기 세대보다 못하다는 느낌을 많이 받기 때문 입니다. 바울도 자신 뒤에 자라나는 세대를 보며 같은 인상을 받았던 것 같습니다.
여기 3절 말씀을 한 번 주의 깊게 보십시오. 사람들은 말씀을 잘 들으려고 하지는 않는데, 그와 동시에 “자기의 사욕을 따를 스승”을 많이 둔다고 합니다. 이는 자신들이 듣고 싶은 내용을 가르치는 교사들을 따른다는 것입니다. “예수 믿으면 부자 됩니다.” “예수 믿으면 건강해집니다.” “예수 믿으면 자녀들이 명문대학교 들어갑니다!” 자신들이 듣고 싶은 메시지를 전하는 교사들만 인정하는 것이죠.
실제로 오늘날 미국에도 이런 가짜 복음을 전하는 자들, 인간의 사욕을 채우는 변질된 복음을 가르치는 거짓 목사들의 교회는 기하급수적으로 그 교세가 성장하고 있습니다. 교회에 가면 ‘성공’, ‘부’, ‘건강’, ‘소원성취’와 같은 것들이 믿기만 하면 주어진다는 달콤함 메시지를 전해주니 여기에 많은 사람들이 현혹되어 버린 것이죠. 이처럼 거짓 된 복음, 변질된 복음을 따르는 자들이 4절에서 말하는 “그 귀를 진리에서 돌이켜 허탄한 이야기를 따르는” 자들 입니다.
이미 북미에서도 게이 목사, 레즈비언 목사들이 나타났습니다. 그들은 교회에서 게이들과 레즈비언들의 결혼 주례를 해줍니다. 그런 교회에서 어떤 말씀을 전하겠습니까? 그런데도 이상하게도 사람들이 자꾸만 몰리는 거에요. 왜 그렇습니까? 자기들이 듣고 싶은, 자기의 사욕을 채워주는 거짓 교사들이 있기 때문 입니다. 죄를 죄라고 말하지 않고, 죄를 용인해 주는 이상한 복음… 바른 교훈은 받지 아니하고, 귀를 가리운 자들 입니다.
5절에 사도 바울은 디모데에게 권면 합니다. “(딤전4:5) 그러나 너는 모든 일에 신중하여 고난을 받으며 전도자의 일을 하며 네 직무를 다하라”” 사실 자신이 죄인이란 이야기 듣기를 좋아하는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 이 세상 모든 사람들이 다 예수의 부활하심을 믿는 것도 아닙니다. 그러다 보니 참 복음을 전파하다 보면 고난이 따르기 마련 입니다. 그러니까 디모데도 물에 물 탄 듯, 술에 술탄 듯 거짓 교사들처럼 사람들이 듣기 원하는 메시지를 전하면 고난 당하지 않고 편하게 목회 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바울은 디모데에게 신중하게 처신하라고 했습니다. 바울은 디모데가 저 거짓 교사들의 모습을 따르지 말고 참 복음을 위해서 고난 받는 삶을 선택하라고 했습니다. 바른 말씀을 전하는 자가 당할 수 밖에 없는 고난을 두려워하지 말고 감수하라고 말했습니다.
바울이 이렇게 디모데에게 고난을 받으라고 감히 말 할 수 있는 자격은 무엇일까요? 바울 자신이 이와 같이 살았기 때문 입니다. 바울은 하나님의 말씀을 있는 그대로 전하기 위해 살다가 혹독한 고난을 당한 사람 입니다. 바울이 디모데에게 유언을 남기 듯 말합니다. “(딤전4:6) 전제와 같이 내가 벌써 부어지고 나의 떠날 시각이 가까웠도다” 바울은 자신을 ‘전제’로 비유합니다. 전제란 무엇일까요? 전제란 제사를 드릴 때 제물 위에 붓는 포도주를 의미합니다. 제물이 단 위에서 불에 탈 때 포도주를 부음으로써 포도주는 금새 증발해 버립니다. 그러나 동시에 포도주에 담겨 있던 진한 향기가 단 위에서 퍼지게 됩니다.
그러니 바울이 자신의 삶이 전제와 같이 부어졌다는 말은, 그의 모든 삶이 하나님께 바쳐질 포도주와 같이 이미 다 부어졌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리고 마치 포도주가 불에 증발하듯이, 이 세상에서 바울의 삶도 이제 얼마 남지 않았음을 암시합니다. 그러나 바울은 담대하게 말했습니다. “(딤전4:7) 나는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 (딤전4:8) 이제 후로는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예비되었으므로 주 곧 의로우신 재판장이 그 날에 내게 주실 것이며 내게만 아니라 주의 나타나심을 사모하는 모든 자에게도니라” 바울은 디모데에게 말합니다. “디모데야 나는 하나님께서 나에게 주신 사명을 다 감당 했단다. 나는 그 동안 선한 싸움을 싸워왔다. 나는 내가 이 믿음의 경주에서 달려갈 길을 다 마치고 믿음을 끝까지 지켰다. 이제 나에게 남은 것은 우승자에게 주어지는 상인 면류관 받을 건만 남았단다. 이 면류관은 내게만 주시는 것이 아니라, 나와 같이 주님의 나타나심을 사모하는 모든 성도들에게 예비된 것이란다.”
오늘 본문에는 나타나 있지 않습니다만, 바울의 심정은 이런 것이죠. “그러니 디모데야 너 역시 주님께서 주실 이 영광의 상을 위하여 이 복음 전파의 길을 걸어가라! 너가 나의 뒤를 계승하여 이 복음 전파의 사역을 이어가거라!” 바울은 이처럼 평생 복음을 위해 자신의 삶을 하나도 남김 없이 하나님께 쏟아 부은 사람 입니다. 그는 자신의 믿음의 아들 디모데에게도 이 사역을 부탁 했습니다. 그도 자신과 같은 길을 걷기를 권면 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들도 바울이 디모데에게 권면해 준 이 바른 복음을 위해 살아가는 길을 걸어가야 합니다. 하나님의 복음을 위해서라면 고난도 두렵지 않고, 예수 그리스도를 위해 끝까지 고난을 인내하며 주님의 뜻에 따르는 자들이 되시길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