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1220 하나님의 영광으로 빛나는 신부처럼 (요한계시록 21장 9-21절)

일곱 대접 재앙을 갖고 있던 일곱 천사 중 하나가 와서 요한에게 신부 곧 어린 양의 아내를 보여 줍니다. 마치 신부 대기실에 앉아 있는 신부에게 안내하듯이, 천사가 요한에게 새 예루살렘을 소개합니다. 성령께서 요한을 데리고 크고 높은 산으로 올라가, 하나님께로부터 하늘에서 내려오는 거룩한 성 예루살렘의 모습을 보여주십니다.
새 예루살렘 성은 그 자체가 귀한 보석 같습니다. 하나님의 영광으로 인하여 그 성은 눈이 부시게 빛이 납니다. 11절에 보니 “그 성의 빛이 지극히 귀한 보석 같고 벽옥과 수정 같이 맑더라”고 했습니다. 벽옥은 붉은 빛을 내는 보석 Jasper 입니다. 수정은 새 하얗게 눈부신 보석 Crystal 입니다. 새 예루살렘이 얼마나 아름답게 반짝이는지 불고 하얀 보석처럼 빛이 납니다.
그 성은 크고 높은 성곽에 둘러싸여 있습니다. 그 성곽에는 문이 열두 개나 있습니다. 동편에 세 문, 북편에 세 문, 남편에 세 문, 서편에 세 문 이렇게 총 열두 개 입니다. 그 열두 문 위에는 각각 르우벤, 시므온, 레위, 유다… 이런 식으로 야곱의 열두 아들, 즉 이스라엘의 열두 지파의 이름이 각각 새겨져 있습니다. 이것은 구약성경 에스겔서 48장 30-35절에 나오는 성의 환상이 그대로 이루어진 것입니다. 또한 이 열두 문에는 각각 열두 천사들이 문지기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이 성에는 아무나 들어가지 못하고 오직 하나님의 자녀만이 들어갈 수 있음을 또 한 번 강조하고 있습니다. 또한 결코 적의 공격에 뚫리지 않을 요새임을 말해 줍니다.
또한 이 성의 열두 기초석에는 어린양의 열두 사도들의 이름이 각각 또 기록되어 있습니다. “베드로, 안드레, 야고보, 요한…” 예수님의 열두 제자들의 이름들이 써 있습니다. 이처럼 새 예루살렘의 문 위에 구약의 열두 지파 이름이 있고, 새 예루살렘의 기초석에 열두 사도들의 이름이 있다는 것은 바로 이 도시가 온 구약과 신약의 완성임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 도시에는 신구약 모든 성도들이 함께 거하여 살게 될 것입니다.
그렇다면 과연 이 새 예루살렘 성의 크기가 얼마나 할까요? 천사가 직접 이 성의 크기가 어느 정도인지 측량해 줍니다. 16절에 봅시다. “그 성은 네모가 반듯하여 장광이 같은지라 그 갈대로 그 성을 척량하니 일만 이천 스다디온이요 장과 광과 고가 같더라” 1만2천 스다디온은 약 1600마일, 약2400 Km 입니다. 미국 LA부터 뉴욕까지 거리가 4200 Km 입니다. 그 반 사이즈가 일만 이천 스다디온 입니다. 그러니 이 성이 얼마나 큰 지 우리가 상상해 볼 수 있습니다. 어마어마한 사이즈입니다. 도시가 아니라 한 성의 한쪽 길이가 2400 Km 니까 상상을 초월합니다. 그런데 사실 실제로 이거보다 더 큰 성곽이 이미 세계에 있습니다. 뭘까요? 중국의 만리장성입니다. 그 길이가 만삼천백칠십 마일(13,170 miles), 이만천백구십육(21,196Km) 입니다. 그러나 만리장성은 한쪽 성벽만 있지요? 새 예루살렘은 사면이 2400 Km의 길이인 성곽으로 둘러 쌓여 있습니다. 17절에 보니 천사가 이번에는 그 ‘성곽’을 척량합니다. 성곽을 측량한다는 말은, 천사가 새 예루살렘 성벽의 두께를 측량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 크기가 일백사십사 규빗 입니다. 지금 단위로 하면 약 60 M 정도 됩니다. 만리 장성의 경우 4.5M 정도 됩니다. 그러니 만리 장성보다 대략 13배나 두껍습니다. 성벽 두께만 60M 되는데 사면으로 2400 Km의 길이로 펼쳐져 있으며, 성경을 보니 장과 광과 고가 같다고 했으니 높이 또한 2,400 Km로 쌓여 있습니다. 인류 역사상 찾아 볼 수 없는 상상을 초월하는 크기의 성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여기서 한 가지 중요한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요한계시록은 상징으로 가득한 책이라는 것입니다. 특별히 요한계시록은 상징적인 숫자를 잘 사용합니다. 그렇다면 오늘 본문은 21장에서 반복해서 사용되는 숫자는 무엇일까요? 바로 12 입니다. 12는 하나님의 백성을 상징하는 숫자입니다. 문도 열 두 개, 기초석도 열두 개였습니다. 이 성의 가로, 세로, 높이도 12,000 입니다. 하나님의 백성을 상징하는 숫자 12 곱하기 X 무한대를 상징하는 숫자 1000 을 곱해서 12,000 스다디온이 나온 것입니다. 성벽의 두께가 144 규빗이라는 것도 12의 제곱입니다. 즉, 이것은 실제로 새 예루살렘의 크기가 이러할 것이라고 그려보는 것도 중요합니다만, 그보다 이 숫자들이 가지는 의미를 파악해야 합니다. 이 새 예루살렘은 하나님의 백성을 상징하는 숫자 12 가 반복됩니다. 따라서 천사가 측량한 새 예루살렘을 가지고 천국은 중국보다 작은가 보다 이렇게 해석하면 안됩니다. 오히려 구원 받은 모든 영적인 이스라엘이 살기에 완전한 사이즈임을 상징적으로 나타내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백성을 상징하는 숫자 12의 테마는 계속해서 이어집니다. 19절에 나오는 기초석도 12개 입니다. 벽옥, 남보석, 옥수, 녹보석, 홍마노, 홍보석, 황옥, 녹옥, 담황옥, 비취옥, 청옥, 자정… 우리가 이름도 들어보지 못한 귀한 보석들이 천국의 기초석으로 사용되었습니다. 만약 우리가 천국에 갔는데, 초가집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면 뭐 그것도 나쁘지만은 않을 수 있겠죠. 그러나 하나님께서 우리가 영원토록 거할 천국을 이처럼 진귀한 보석들로 만들어 놓으셨다는 우리가 하나님께 얼마나 존귀한 존재인지를 다시 한 번 확인시켜 줍니다. 우리 주님께서 우리를 위하여 예비하신 처소는 우리의 상상을 초월합니다. 우리들은 이곳에서 좀 더 큰 집, 좀 더 좋은 집 사려고 아둥바둥 거리려 살지만, 사실 진짜 좋은 집은 따로 있는 것입니다.
새 예루살렘에 있는 열두 개의 문은 각각 하나의 진주로 되어 있습니다. 진주가 얼마나 크면 그 하나가 문이 될 수 있을까요? 그런데 여기 한 가지 흥미로운 사실이 있습니다. 왜 새 예루살렘의 문이 진주로 되어 있을까요? 다른 보석들은 다 땅 속에 묻혀 있거나 광물 속에서 파낸 보석들입니다. 그러나 이 세상 많은 보석 중에 오직 진주만이 생명체에 의해 만들어 진 보석입니다. 진주는 바다에서 나오는 보석입니다. 조개가 겉에서는 딱딱하고 단단하지만 그 안에는 부드러운 조갯살이 있습니다. 조개 안에 모래가 들어가면 그 조갯살에 상처를 냅니다. 그런데 모래가 자꾸만 들어옵니다. 조개가 괴로우니까 진액을 내어서 그 모래를 휘어 감아버립니다. 그러한 활동이 오랜 세월 흘러서 진주가 되어 버리는 것이죠. 새 예루살렘 성에 들어가는 성도들을 보세요. 이 세상의 수많은 환난 가운데서도 낙심하지 않고, 기도하고 인내하면서 믿음을 지킨 사람들입니다. 그들의 신앙이 바로 이 진주와 같은 것이죠. 새 예루살렘의 문이 다른 보석이 아니라 진주로 단장되어 있다는 것은 이러한 영적인 의미가 있습니다.
요한이 새 예루살렘에 안에 들어 가보았습니다. 그런데 그가 아무리 찾아도 보이지 않는 건물이 하나 있습니다. 바로 성전이에요… 성전이 왜 없을까요? 22절을 보니 그 이유가 나와 있습니다. “이는 주 하나님 곧 전능하신 이와 및 어린 양이 그 성전이심이라…” 천국에는 성전이 따로 필요가 없습니다. 그곳에는 하나님의 임재가 충만합니다. 앞서 요한계시록 16절에 ‘장과 광과 고가 같다’는 기록이 나와 있었습니다. 이는 가로, 세로, 높이가 똑같다는 것입니다. 새 예루살렘 성의 모양이 아주 독특합니다. 쉽게 이야기하면 정육면체인 큐빅 모양입니다. 그렇다면 혹시 오늘 본문에 나오는 새 예루살렘을 제외하고 신구약 성경에서 나오는 건축물 중에 가로, 세로, 높이가 똑 같은 유일한 건물이 하나 더 있을까요? 네 딱 하나 더 있습니다. 바로 ‘지성소’ 입니다. 따라서 구약 율법에 익숙했던 유대인들은 오늘 이 본문을 읽으며 ‘지성소!’하고 떠 올렸을 것입니다. 지성소는 이름 그대로 지극히 거룩한 공간이란 뜻입니다. 지성소는 아무나 들어가지 못했습니다. 하나님의 거룩하심 때문에 죄인인 인간이 들어가면 다 죽을 수 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오직 대제사장만이 들어갈 수 있었습니다. 제사장도 일년에 딱 한 번 대속죄일에만 휘장을 지나 그곳에 들어갈 수 있었습니다. 그것도 그냥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대제사장은 목욕을 하고 옷도 거룩한 세마포를 입어야 했습니다. 또한 죄를 씻기 위한 속죄 죄물인 소의 피와, 백성들의 죄를 씻기 위한 염소의 피를 들어야 비로서 들어갈 수 있었습니다.
이 거룩한 지성소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성소와 지성소를 구분하는 휘장을 건너가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돌아가실 때 바로 이 휘장이 찢어졌습니다. 주님께서 우리의 죄를 속하는 속죄제물이 되셨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 사건의 진짜 클라이막스는 우리가 영원히 살게 될 새 예루살렘이 바로 하나님이 거하시는 ‘지극히 거룩한 성소’, 지성소가 된다는 사실입니다. 이전에는 대제사장만이 들어갈 수 있었던 거룩한 공간에서 우리가 하나님과 함께 살게 되었습니다. 우리가 그토록 갈망하던 하나님의 충만을 영원토록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그래서 새 예루살렘에는 더 이상 성전도 따로 필요가 없는 것입니다. 하늘에 떠 있는 해도 달도 더 이상 필요가 없습니다. 하나님의 영광이 밤낮으로 밝은 빛을 비추고 있기 때문입니다. 천국에는 밤이 없습니다. 오직 환한 낮만 영원히 계속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