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1123 배에는 쓰나 입에는 꿀같이 달리라 (요한계시록 10장 1-11절)

성경에서 구름은 항상 신적인 수송 수단입니다. 예수님께서도 부활 후 이 세상을 떠나 하늘로 올라가실 때 구름을 타셨습니다. 다른 천사들은 다 날개로 날아 다니는데 오늘 본문에 나오는 이 천사는 구름을 타고 다닙니다. 머리 위에 무지개도 있고 게다가 얼굴도 해와 같이 빛이 납니다. 이쯤 되니까 사람들이 “이 천사가 혹시 예수님 아닐까?”하고 생각합니다. 실제로 그렇게 해석하는 신학자들도 많이 있습니다. 그러나 이 천사는 천사일 뿐 예수님은 아닙니다. 그것을 어떻게 알 수 있을까요? 1절 말씀에 나오는 힘 센 다른 천사라는 표현에서 그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여기서 쓰인 ‘다른’이라는 헬라어 표현은 전혀 다른 존재를 설명할 때 쓰는 용어가 아니라, 같은 종류 중 다른 것을 설명할 때 사용되는 말입니다. 예를 들면 사과와 오렌지가 다른 것처럼 전혀 다른 것일 때는 쓰지 않습니다. 두 개의 사과를 놓고 이 사과 그리고 다른 저 사과 이렇게 같은 부류의 다름을 의미할 때 쓰는 헬라어 표현이 사용 되었습니다. 그러니 오늘 본문 1절에 나타난 천사는 예수 그리스도가 아닙니다. 그러나 다른 천사들과는 달리 높은 위치에 있는 큰 권세를 받은 천사임에는 분명합니다.
자, 이 천사의 특징이 2절에 이어집니다. “그 손에는 펴 놓인 작은 두루마리를 들고 그 오른 발은 바다를 밟고 왼 발은 땅을 밟고” (계 10:2) 바다와 땅을 오른발, 왼발로 밟은 것은 이 천사가 받은 권세의 크기를 나타냅니다. 힘이 센 천사의 손에는 펴 놓은 작은 두루마리가 있습니다. 이전에 계시록에서 나왔던 두루마리들은 다 인봉 되어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제 어린양으로 인해 두루마리가 펼쳐졌습니다. 숨겨져 왔던 하나님의 계시가 이제는 오픈 된 것입니다. 모든 사람들에게 주어질 수 있도록 공개되었습니다. 이 책에 무슨 내용이 기록되었는지 7절을 한 번 보시겠어요? “일곱째 천사가 소리 내는 날 그 나팔을 불게 될 때에 하나님의 비밀이 그 종 선지자들에게 전하신 복음과 같이 이루리라.’’ 이 책에는 하나님의 비밀도 있고 복음도 있습니다. 전개되는 메시지로 볼 때 하나님의 비밀이 란 마지막에 하나님이 역사를 어떻게 종결하는가 하는 마지막 심판에 대한 비밀일 것입니다. 그러나 이 책이 우리를 심판과 재앙으로만 몰아넣는다면 결코 복된 소식일 수가 없을 것입니다. 이 책의 메시지가 기쁜 소식일 수 있는 이유는,성경의 초점인 그리스도께서 십자가 사역을 통해서 우리를 구원하신다는 메시지 때문입니다. 이 작은 책의 내용은 한마디로 심판과 구원의 메시지입니다. 어거스틴은 이렇게 말합니다. 성경은 하나님의 구원의 역사이면서 동시에 하나님의 심판의 역사이다.”
그런데 한 가지 흥미로운 사실은 이 힘이 센 천사의 손에 들린 두루마리의 사이즈가 작다는 데 있습니다. 사실 이슬람 교도들이 읽는 코란이나 유교의 경전과 비교해 보면 성경책은 비교적 작은 책입니다. 그러나 비록 그 크기는 작을지 모르지만 성경이야 말로 이 세상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책입니다. 본문에 천사의 손에 들린 이 작은 책이야말로 마지막 때에 가장 중요한 역학을 하게 될 책인 것이지요. 천사의 손에 들려진 저 작은 두루마리가 우리 손에 주어졌습니다. 여러분은 성경을 어떻게 대하고 계십니까?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이 성경을 소중하게 여기시길 바랍니다.
3절 말씀을 함께 읽겠습니다. “사자가 부르짖는 것 같이 큰 소리로 외치니 그가 외칠 때에 일곱 우레가 그 소리를 내어 말하더라”(계 10:3) 정글에서 울려 퍼지는 사자의 포효소리는 모든 동물에게 두려움을 가져다 주었습니다. 그 소리는 못 들은 척 할 수 있는 소리가 아니었으며, 모든 생명체에게 경각심을 갖게 하는 소리었습니다. 이 천사의 소리가 사자의 부르짖는 것 같았다는 것은 그 큰 소리가 주는 장엄함을 나타냅니다. 또한 여기서 “일곱 우레가 말했다’’는 것은 우레가 일곱 번, 또는 일곱 개의 개념이 아니고, 하나님이 말씀하셨다는 문학적인 표현으로 하나님께서 마치 천둥이 치는 것처럼 커다란 소리로 말씀하고 계십니다.
하늘에서 하나님의 음성이 우렛소리처럼 들리자, 사도 요한은 신기해 하며 이 음성을 받아 적으려고 했습니다. 하지만 본문 4절 말씀을 보니까요 하늘에서 어디선가 들리는 목소리가 그에게 말하기를 그 우렛소리를 통해서 받아 적지 말고 책을 인봉하라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의 뜻이 우리에게 알려지긴 했으나, 모든 것이 다 계시 된 것은 아닙니다. 여전히 감춰져 있는 하나님의 뜻이 있습니다.
지금은 이해되지 않고 아직 때가 이르지 않았지만, 하나님의 뜻은 반드시 이루어집니다.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롬 8:28). 믿음은 인내를 요구합니다. 삶이 불안하고 불확실해도 또한 더디 이뤄지는 것처럼 보여도 하나님의 뜻이 이뤄지리란 인내를 가져야 합니다. 인내는 오히려 신앙의 연단을 가져다 주며, 그 연단은 결국 우리의 소망을 이뤄줍니다. 하나님이 예수 그리스도를 우리를 위해 바로 내어 주시기까지 하셨는데, 이제 우리에게 내놓지 못하거나 주저하거나 아끼시는 것은 없습니다. 이러한 논리를 따를 때 우리에게 일어나는 크고 작은 폭풍우와 행, 불행이 전부 우리를 위한 것이 됩니다. 우리 인생의 좋은 일, 행복한 일, 내가 원했던 일만이 아니라 모든 것이 우리의 선을 위해 작용할 수 있다고 성경은 분명히 말합니다. 기록하지 말고 봉인하라고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그 내용도 반드시 이루어집니다.
이러한 믿음의 삶을 살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것이 바로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입니다. 오늘 본문에 사도 요한에게 두루마리를 건네주는 천사의 입을 통해 하나님 말씀에 대하여 우리가 가져야 하는 태도들을 한 번 살펴보겠습니다.
8절 말씀을 함께 읽겠습니다. (10:8) “하늘에서 나서 내게 들리던 음성이 또 내게 말하여 가로되 네가 가서 바다와 땅을 밟고 섰는 천사의 손에 펴 놓인 책을 가지라 하기로” 가장 먼저 성경을 가져야 합니다. 오늘날 우리는 성경을 자유롭게 소유할 수 있지만,지나간 시대를 돌이켜 볼 때 지금과는 상황이 많이 달랐음을 알 수 있습니다. 종교개혁 시대까지만 해도 성경은 여전히 금지된 책이었습니다. 천주교가 전 세계를 교권 적으로 지배했던 시기임에도 불구하고 일반 신도들은 어느 누구도 성경을 가질 수 없었습니다. 종교개혁이 제공한 가장 놀라운 선물 가운데 하나는 사제의 손에만 묶여 있었던 성경을 평 신도들의 손에 넘겨준 것이었습니다. 루터는 그 당시 모든 독일 사람들이 성경을 읽을 수 있도록 성경을 번역했습니다. 그래서 서민들도 성경을 읽을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인류 역사를 통해서 이 성경은 또 한번 빼앗긴 책이 되고 말았습니다. 공산주의가 세계를 휩쓸기 시작할 때였습니다. 공산 치하에서 신앙 생활 하던 사람들은 “성경을 단 한번 만 손에 잡아 봤으면’’ 하는 애절한 소원을 갖고 있었습니다. 1985년에 소련이 서서히 개방 정책을 펼 무렵에, 소련의 그리스도인들은 성경 한 권만 갖다 주어도 눈물을 흘리며 성경에 입을 맞추고 그것을 가슴에 꼭 품는다고 합니다. 1988년에 소련에 간 사람에 따르면, 교회에서 성경을 이십 권쯤 가지고 그것을 나누어 준다고 하니까 400명 가량 줄을 섰다고 합니다. 성경책이 너무 귀한 거에요. 아직도 공산권에는 성경이 흔하지 않습니다. 공산권이 무너져 가면서 성경이 들어가고 있습니다만, 아직 저 북한에도 성경은 구하기 너무 어렵습니다.
무엇이든 많으면 그것의 가치를 잊기 쉽습니다. 우리는 얼마나 성경이 많습니까? 요즈음은 성경의 종류도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그래서 그런지 성경이 얼마나 소중한지 잘 모르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단순히 성경책을 갖고 있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정말 자신의 삶에 소유할 목적으로 성경을 소유하고 있는가가 더 중요합니다.
9절 말씀을 함께 읽겠습니다. (10:9) “내가 천사에게 나아가 작은 책을 달라 한즉 천사가 가로되 갖다 먹어버리라 네 배에는 쓰나 네 입에는 꿀 같이 달리라 하거늘” 이 책의 말씀을 먹으라는 것입니다. 성경 말씀을 먹는 감격에 대해서 구약성경에 많이 기록되어 있는데,그 중의 하나로 예레미야서 15장 16절을 들 수 있습니다. “만군의 하나님 여호와시여 나는 주의 이름으로 일컬음을 받는 자라 내가 주의 말씀을 얻어 먹었사오니 주의 말씀은 내게 기쁨과 내 마음의 즐거움이오나 ”
말씀을 소유하고 가까이 두는 것만이 아니라 식사를 하듯 말씀을 정말 먹는 것입니다. 내 영혼의 풍요함을 위해서 정말 갈급한 심정으로 이 말씀을 먹는 것입니다. 우리가 썩어 없어질 육신을 위해 서도 우리가 날마다 음식을 먹는데, 영원한 영혼의 건강함을 위해서는 정말 얼마나 많이 투자 해야겠습니까?
그런데 9절 보니 천사가 사도 요한에게 하는 말이 이 두루마리가 “네 배에는 쓰나 네 입에는 꿀같이 달리라’고 합니다. 말씀을 지식으로 취하는 것은 즐거운 일입니다. 꿀같이 단 것입니다. 성경 말씀을 달다고 느끼지도 못하면 아직 성경을 조금도 모른다는 말입니다. 입에서는 달지만 배에서는 쓰다고 했는데, 어떤 사람은 그 내용이 심판의 메시지이기 때문에 쓰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저는 조금 다르게 생각합니다. 즉,말씀을 받는 것은 즐거운 일이 지만 그것을 내 삶 속에 적용할 목적으로 소화시키는 것은 쓴 경험이라는 의미로 받아들입니다. 말씀에 순종하는 일은 쉽지 않은 경험이며 아픔을 수반하기도 합니다. 우리가 타락한 인간 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렇지만 말씀을 먹지 않으면 안 됩니다.
11절 말씀을 함께 읽겠습니다. “저가 내게 말하기를 네가 많은 백성과 나라와 방언과 임금에게 다시 예언하여야 하리라 하더라’’(10:11). 여기의 “예언하라’’는 “선포하라’’는 의미입니다. 그렇다면 선포하라는 것을 왜 예언하라고 했습니까? 말씀의 선포는 이 말씀을 받는 사람들의 미래를 좌우하기 때문입니다. 성경에서 말하 는 예언은 앞으로 생길 일을 미리 말하는 것만이 아니라 한 국가,한 역사,한 사회의 미래를 좌우하는 메시지를 가리킵니다. 백성들을 향하여,나라를 향하여, 방언들을 향하여, 임금들을 향하여 예언하라고 했는데,이것은 세상의 모든 사람들을 다 포함하기 위한 표현입니다.
성경은 말하기를,이 말씀을 받고 먹고 삶 속에 적용하는 것으로 끝내지 말고 이 말씀을 가지고 세계 모든 만방에 나가서 모든 언어,모든 그룹, 모든 인종을 향해서 선포하라고 합니다. 선교의 책임을 강조하는 것입니다. 말씀을 정말 순종하고자 하는 자는 마지막 선교의 명령까지 순종해야 합니다. 말씀에 대한 궁극적인 순종은 선교에 대한 순종으로 나타나지 않으면 안 됩니다. 성경은 마지 막으로 부탁하기를,이 말씀을 먹고 이 말씀을 받은 자들은 다시 이 말씀을 예언하라고 합니다. 모든 백성,모든 나라,모든 인종들에게 이 말씀을 예언하라고 합니다. 이것이 작은 책의 비 전입니다. 만약 이 세계의 모든 인류가 이 책으로 구원받지 못한다면,그들은 이 책으로 심판 받게 될 것입니다.
예수님은 사람들에게 구원의 주님이 되든가 심판의 주님이 되든가 둘 중의 하나입니다. 예수 님을 구원의 주님으로 만나지 못한 사람들은 어느 날 심판대 앞에서 예수님을 심판의 주님으로 만나게 될 것입니다. 그 마지막 심판의 때가 오기 전에 구원의 주님을 증거하기 위하여 이 구원의 메시지를 들고 나갈 하나님의 사람들, 교회들은 어디에 있는가? 이것이 작은 책의 비전입니다. 사람들은 심판에서 구원으로 옮길 수 있는 이 놀라운 생명의 비밀이 이 작은 책 안에 들어 있다는 엄청난 사실을 생각해 보십시오. 그래서 요한 웨슬레는 어느 날 이런 기도를 했습니다.
“예수님,나에게 이 책을 주소서. 내가 어떤 희생을 치르고라도 이 책의 메시지를 받게 하소서. 그리하여 이 책이 참으로 나의 책이 되게 하소서. 그리고 나로 이 책의 사람이 되게 하소서.” 종교개혁 시대에 급진적인 개혁자로 불렸던 하나님의 사람들은 “그 책의 사람들’’(People of the Book)이라고 불렸습니다. “이 책의 사람, 구원의 말씀, 생명의 말씀에 붙잡힌 사람,이 한 책의 사람이 되게 하소서.” 이 지구상에 수많은 책들이 있지만 그 책들을 통해서 정말 자기의 삶이 달라지고 자기의 생명 이 구원되었다고 간증한 경우가 있었습니까? “나로 이 책의 사람이 되게 하소서!’’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말세의 구원의 유일한 희망은 바로 이 작은 책입니다. 이 작은 책을 가지고 말세에 승리하는 우리가 되기를 원합니다. 이 말씀을 늘 가까이 가지시고, 그 말씀을 먹으시고, 말씀을 다른 이들에게 전하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