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1031 영적 침체에 빠진 욥 (1) (욥기 7장 1-18절)

몹시도 지치고 힘든 날에는 누군가에게 위로 받고 싶은 것이 사람의 마음입니다. 지쳐 있는 사람이 다른 사람의 격려와 위로로 새 힘을 얻고 용기를 얻습니다. 매우 힘들게 일하고 지치고 무거운 어깨를 간신이 이끌고 퇴근하여 집에 돌아온 남편에게 아내의 건내는 따뜻한 한 마디가 남편에게는 얼마나 큰 힘과 위로가 됩니까? 또한 힘들게 일하고 온 아내를 향해 남편이 “오늘 하루 별 일 없었어?”하고 사랑과 관심을 갖고 물어봐 주는 이 한마디는 마음과 마음을 이어주는 시작점이 됩니다. 연약한 인간은 서로에게 위로를 주고 받으며 살아갈 때 마음에 진정한 쉼과 평안함을 누리게 됩니다.
그러나 반대로 마음이 너무도 힘들고 무거운 날, 나를 위로해주는 사람이 한 사람도 없을 때 인간은 깊은 외로움과 쓸쓸함을 경험하게 됩니다. “여보 오늘 이런 일이 있어서 너무 힘들었어…” 그럴 때 “아이고… 그런 일이 있었어..? 당신 오늘 하루 정말 힘들었겠다…” 이런 공감의 말 한 마디가 큰 힘을 주죠… 그러나 반대로
오늘 본문의 주인공 욥은 그 어느 때보다도 그를 위로해줄 사람이 절실하게 필요한 상황에 놓여 있습니다. 평생을 모아온 재산이 반나절 만에 줄 도산을 맞이했습니다. 개인파산 신청을 해야 하는 이 안타까운 상황에서 또 다시 그의 일곱 아들과 세 딸이 죽음을 맞이했습니다. 눈물을 머금고 어떻게든 신앙의 힘으로 버티고 있는 데… 몸에 질병까지 찾아왔습니다. 발바닥부터 정수리까지 악창이 나서 피와 고름이 가득하고, 가까이 가기에는 인상을 쓰게 하는 악취가 그의 몸에서 풍겨져 나왔습니다. 날파리들이 그 주변을 날라 다녔습니다. 욥은 피와 고름이 응고 되며 딱지가 지자 간지러움을 참을 수 없게 된 욥은 기와 조각을 손에 들고 몸을 박박 긁기 시작했습니다. 이 모습을 본 그의 아내는 속에서 타오르는 분노로 외쳤습니다. “이래도 당신이 하나님께 순전을 지키겠습니까? 하나님을 욕하고 죽으십시오!” 그의 마지막 우군인 아내도 쏘는 듯한 말로 그에게 내뱉은 그 그를 버렸습니다. 그 이후 그를 사랑한다는 친구들이 그에게 찾아왔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욥에게 위로의 말을 주기는커녕 염장을 지르는 말로 그를 괴롭혔습니다. “세상에 하나님께 악을 행하지 않고 이러한 재앙을 받는 사람을 봤느냐? 네가 평상시에는 의롭게 보였으나, 지금 네가 당하는 재앙을 보니 분명 너에게 은닉되어 있는 범죄가 있다는 사실이 분명하다. 어서 너의 죄를 말해보거라.” 이렇게 욥의 친구들은 그에게 궁지로 몰고 갔습니다.
욥은 이 세상에서 철저하게 홀로 남겨져 있었습니다. 처음에 욥은 절망적인 벼랑 끝에 서 있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며 주님을 찬양하는 성숙한 신앙인의 모습을 보여주었습니다. 그러나 어느 정도 기간인지 알 수 없으나 이런 고통스러운 시간이 계속해서 이어지자, 욥의 내면에 무언가 변화가 일어나기 시작했습니다. 그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 영적 침체에 빠지게 되었습니다. 그로 인해 이전에는 욥 자신이 전혀 상상 할 수 없었던 감정들이 확 일어나면서 욥을 에워싸기 시작했습니다. 과연 욥이 갖게 된 이 감정의 정체는 무엇이었을까요?

놀랍게도 우리가 의인이라 알고 있던 욥의 마음 안에서 발견된 것은 다름 아닌 하나님을 향한 불평과 원망의 감정이었습니다. 본문16절 말씀을 함께 읽겠습니다. (7:16) “내가 생명을 싫어하고 항상 살기를 원치 아니하오니 나를 놓으소서 내 날은 헛것이니이다.” 욥은 지금 하나님께 “하나님 이제 그만 합시다. 나 더 이상 살고 싶지 않습니다. 그만 하시죠. 날 좀 가만히 내버려 두세요.” 이렇게 하나님을 향해서 원망 섞인 목소리로 외치고 있는 것입니다.
자녀를 키우다 보면 사춘기를 한참 지나는 아이들이 부모에게 대들 때 단골로 등장하는 대사가 있습니다. “아빠가 나한테 해준게 뭐가 있어?” “엄마가 도대체 나한테 해준 게 뭐가 있는데? 내 인생에 간섭하지마!” 철없는 시절 이 한마디 말이 부모님의 가슴에 얼마나 큰 상처와 아픔을 주는지도 잘 모릅니다. 그러나 왜 아버지께서 어머니께서 해주신 일이 없겠습니까? 자녀도 그 사실을 잘 알지만 너무 속상하고 부모에 대한 원망이 마음에 가득하다 보니까 이런 말을 부모에게 하는 거죠.
욥도 하나님께서 자신에게 베풀어 주신 것들을 잘 알고 있습니다. “주신 자도 여호와시요 취하신 자도 여호와시라” 고백했던 사람이 왜 그것을 모르겠습니까? 그러나 지금 욥도 자기 처지가 너무 힘들고 어려우니까 하나님을 향해서 불평과 원망이 섞인 목소리로 이야기하고 있는 것입니다. 16절에 “날 좀 놓으소서”라는 이 말은 영어로 “Leave me alone” 입니다. 사춘기 학생들이 “엄마 내 인생에 간섭 좀 하지마! 날 좀 내버려 둬!”하고 자기 방문을 꽝 닫고 들어갈 때 하는 그런 표현을 욥이 하나님께 하고 있습니다.
지금 자신이 당하는 이 고난이 죄에 대한 징계이든, 아니면 여타 다른 목적을 가진 징계이든 더 이상 견딜 수 없으니, 제발 좀 이대로 죽게 해 달라는 욥의 애처러운 심정을 표현하고 있습니다.

17절 말씀에 욥은 “사람이 무엇이관대 주께서 크게 여기사 그에게 마음을 두시고” 라고 했습니다. 사람이 무엇이관대라는 표현 어디선가 많이 들어보신 적 있지 않으십니까? 다윗이 지은 시편 8편에 나오는 표현입니다. 찬양으로도 유명한 구절입니다. “사람이 무엇이관대 주께서 저를 생각하시며 인자가 무엇이관대 주께서 저를 권고하시나이까” 하늘과 땅과 바다 온 우주만물을 지으신 창조주 하나님께서 어찌 나같이 작은 인간을 생각하십니까… 다윗은 자기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에 감격해서 찬양을 불렀습니다. “주께서 저를 권고하시나이까”에서 “권고하다”란 말은 원어로 “방문하다.” 란 뜻입니다. 그 크신 하나님께 매 순간 저 같이 보잘 것 없는 존재를 찾아오십니까? 이처럼 다윗은 가까이 다가오시고 매 순간 그를 붙들고 계신 하나님의 임재를 찬양했습니다.
그러나 오늘 본문에 나오는 “사람이 무엇이관대..”는 다윗이 사용한 것처럼 찬양과 감사의 마음에서 우러나온 표현이 아닙니다. 욥은 지금 하나님께 빈정대면서 이야기하고 있는 것입니다. “아이고… 그 크신 하나님이 나 같이 천한 사람을 생각하십니까..” 한국 속담에 “고양이 쥐 생각한다”라는 말이 있죠? 정치인들이 평상시에는 한 번도 방문 안 하던 곳을 선거철만 되면 돌아다니죠? 그러면서 서민들 손 잡아주고, 어떻게든 달콤한 말로 그들의 마음을 사로잡으려고 하잖아요? 그럴 때 사람들이 “아이고마 고양이 쥐 생각한다…” 하고 말합니다.
지금 욥이 하나님을 그처럼 비꼬듯이 이야기하고 있는 거에요. “아이고 하나님 성은이 망극합니다. 사람이 무엇이관대 주께서 저를 크게 여기사 그에게 마음을 두십니까?” 욥은 지금 보잘 것 없는 인간을 왜 구지 징계하십니까? 하고 돌려 말하며 하나님을 원망하고 있는 것입니다. 앞서 다윗에게는 하나님의 존재가 감사와 찬양의 이유였으나, 지금 욥에게는 하나님의 존재가 무거운 짐스럽게 느껴지고 있는 것입니다.
18절 말씀을 봅시다. (7:18) “아침마다 권징하시며 분초마다 시험하시나이까” 아침은 경건한 족장들에게 있어서 하나님을 묵상하는 시간입니다. 하나님을 묵상하는 가운데 하나님이 그의 마음을 책망하시는 거에요. 우리가 아침에 성경을 읽을 때 “아, 그래 내가 참 부족하구나 지금 이렇게 살면 안되지…”하고 느끼듯이 아침마다 하나님이 책망 하시는 거에요. “하나님 주님은 아침마다 우리를 야단치시는군요. 분초마다…한 시도 쉬지 않고 우리가 잘 사는지 못 사는지 혹독하게 우리들을 시험하십니까?” 욥은 계속해서 하나님을 향한 불평과 원망을 터놓았습니다.
아니, 주신 자도 여호와시고 취하신 자도 여호와시라며? 하나님께 복을 받았으면 재앙도 받는 게 마땅하다며? 전에는 이렇게 신앙을 고백하던 자가 어떻게 이렇게까지 불신자처럼 변해버렸을까요? 이것이 바로 영적 침체의 무서움입니다. 한동안 감당할 수 없는 시험을 인내하였던 이 사람도 침체 속에서 하나님을 향해 불평하게 된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어떤 고난을 만나고 어려운 일을 당하면, 우리는 그 문제를 해결해보려고 어떻게든 노력합니다. 예를 들어 몸에 병이 든 사람은 어떻게든 그 병에서 나음을 입으려고 노력할 것입니다. 약을 먹어보고, 주사도 맞아보고, 병원에도 가보고, 자신이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해보지 않겠습니까? 그러나 그런 가운데 자신도 모르는 사이 자신의 영혼을 돌보는 일은 소홀해질 때가 많습니다. 그러다 보면 병이 낫지 않고, 오래 지속될 때 많은 환자들이 좌절을 경험하고 절망을 느끼고 그로 인해 영혼의 침체 속에 빠지게 될 때가 많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 인생에 찾아오는 환난보다 더 무서운 것은 영혼이 파괴 되는 것입니다. 욥이 본래 처음부터 하나님을 향해 이런 태도를 가진 사람은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계속되는 고난 속에서 욥은 자신 안에 쌓여 있던 하나님을 향한 원망과 불만의 쓴 뿌리들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혹시 우리들도 삶 속에 오래되는 고통 속에서 욥과 같이 마음 속으로는 하나님을 원망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하나님께 불평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삶이 바쁘다고 힘들다고 영혼을 돌보는 일을 소홀히 하면, 반드시 욥과 같이 영적 침체에 빠지게 됩니다. 오늘 이 새벽 우리의 영혼은 안전합니까?? 하나님을 향해 온전하게 서 있는지 자신의 영혼을 돌아 볼 수 있는 귀한 하루 되시기를 바랍니다.